오늘의 이야기는 양자역학 전자 이중 슬롯 실험을 통한 코펜하겐 해석에서 비롯된 실증론과 실재론에 대한 간략한 단상입니다.
파동과 입자의 성질을 모두 지니는 전자는 관측이 이루어질 때는 입자처럼 존재하고, 관측되지 않을 때는 파동처럼 존재합니다.
이러한 실험에 의해 다중우주론이 나오게 되었고, 철학적 관점에서 실증론과 실재론이 대립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 실증론과 실재론의 의미
실증론적 관점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내가 바라보았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즉, "우리가 지각하는 것만이 실체이고,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라는 의미입니다. (버클리)
결국 나 자신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우주 역시 나 자신의 인지와 자각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 되는 것이며, 만약 나 자신이 지각하지 못하는 세계는 존재하지 않은 것, 혹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됩니다.
내가 소유한 것들..
예를들어,, 책, 노트북, TV, 스마트폰 등의 물건들 역시 내가 바라보고 인지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내가 그것을 바라보고 지각하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재론적 관점에서는 실증론을 다음과 같이 비판합니다.
"내가 태양을 바라보기 전까지 태양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내가 무엇인가를 바라보든 아니든 물리량은 이미 존재한다"
설령 내가 관측을 하든 말든 실체로서의 태양이, 달이, 그리고 우주는 존재하며, 그 에너지와 질량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주류 과학의 주장입니다.
🌺 문학 작품 속의 실증과 실재, '꽃'의 詩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양자 논란을 아주 간단 명료하면서도 은유적으로 표현한 문장이 있습니다.
바로 자유로운 표현을 추구하는 문학 작품에서 말이죠.
이를 상징적으로 잘 표현한 문학 작품은 바로 김춘수 시인의 詩 '꽃'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실재와 실증의 경계와 구별이 모호하면서도 존재의 의미를 명확히 표현한 작품입니다.
양자역학 코펜하겐 해석에서 파생된 실증과 실재..
그보다 관측자인 나 자신에 대한 존재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볼 수 있는 그런 함축적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합니다.
과학과 수학, 철학과 문학, 그리고 우주..
어찌 보면 이 모든 학문들은 이미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